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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설립배경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는 프랑스 로렌지역에서 태동하였다. 17세기 말의 로렌지방은 오늘날 프랑스와 독일의 변방으로써 사상적, 종교적, 정치적 위기에 처해있던 유럽 국가들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특히 수녀회 창설지 툴(Toul) 지역은 그 혼란의 중심지로 이민족들의 침입, 전염병, 흉년 등 많은 재난이 이어진 척박한 곳으로, 소녀들에게는 교육의 기회가 없었다.

창설자 쟝 바틀로 신부

수녀회 창설자 바틀로 신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있는 툴(Toul) 지역 브릴레에서 1688년 태어났다. 아이들과 여성들에 대한 교육의 부재와 많은 환자들의 결핍상태가 툴교구 사제인 바틀로 신부를 움직였고 바틀로 신부는 당신의 사명에 여교사들을 초대하였다. 이렇게 수녀회는 연민의 움직임에서 탄생했다.

바틀로 신부는 거의 30년 동안 수녀회의 확장 및 안정과 심화에 온 힘을 쏟았다.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힘이 완전히 빠질 정도로 학교설립에 몰두하였고 1722년 브릴레에 있는 부친의 집에 소녀들을 위한 학교를 열었다. 학교설립을 통해 수녀회가 확장되었고 영적‧전문적 양성을 통해 수녀회의 튼튼한 기초를 놓았다. 여교사들의 체계적인 양성을 위해 어려운 재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툴의 뮈로 거리에 집을 한 채 매입하여 교사양성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으니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수녀들이 ‘모교’(Mère-école)라 부르는 곳이다. 이 집은 학교, 수련소, 진료소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프랑스 최초의 여교사 양성기관으로서 그 시대의 사범학교 역할을 하였다. 수녀들은 이곳에서 매년 연피정을 하고 교사로서 해야 할 것을 배우고 필요한 정보를 나누며 영적 양성과 교육적 능력을 갖추었다. 1725년엔 교수법을 작성하여 전문적인 양성에 힘썼다.

1748년 바틀로 신부 선종 당시 32개의 학교가 있었는데 40개의 분원에 100명 정도의 수녀들이 있었고 1789년 프랑스 혁명 전까지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95곳에 학교가 설립되었다. 바틀로 신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젊은이들 교육에 대한 열정, 곧 교육의 기회와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그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통하여 인간답게 살아갈 길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바틀로 신부가 떠난 후 사람들은 교사들을 ‘바틀로의 딸들’이란 뜻으로 “바틀로트(Vatelottes)"라고 불렀다. 1802년부터는 현재 명칭인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Soeurs de la Doctrine Chrétienne)”로 불리었다.

성장과 발전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으로 많은 수도회들이 해체되었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에서 운영하던 모든 학교가 폐쇄되고 수녀들도 해산되었으나 혁명 후 1802년 흩어졌던 수녀들이 모여 수녀회를 재조직하였다. 프랑스 낭시(Nancy) 옛 카푸친 수도회 건물을 받아 새 모원을 설립하였고 이곳은 오늘날까지 모원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재건의 시기를 살았던 뽈린 드 파이오네(Pauline de Fionnet) 총장 재임기(1821-1855)에 수녀회는 조직의 체계화, 많은 영적인 문헌 및 사회가 당면한 여러 가지 요구를 감안하여 학교에 적응할 교수법을 편찬하는 등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 시기 뽈린 수녀의 협력자로서 함께한 무즈노 신부는 많은 영적 편지를 남겼고 수련장과 함께 수련자 지침서를 작성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시기에 수녀회는 개방과 뿌리내림, 조직 강화를 통해 성장해갔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수녀들은 상황에 대한 현실감각을 가져야 할 것이며 그 안에서 더 잘 봉사할 기회를 찾아야 하고 전통을 따르되 전통에 종속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무즈노 신부가 말했듯이 수녀회의 사명은 직업학교, 고아원, 내부봉사, 가난한 이들의 환대, 환자 돌봄, 사제들의 사목에 협력 등 다양한 형태로 확대되어갔다.

수녀들은 벨기에(1833년), 룩셈부르크(1840년), 알제리(1841년), 이탈리아(1904년), 모로코(1912년) 로 파견되어 하느님의 사업을 하였다.

1844년,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는 프랑스 툴 교구로부터 수도회로서 공식 승인을 받았고 1929년 3월 12일, 교황 비오 11세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의 회칙을 최종 승인함으로써 수도회는 교황청 소속이 되었다. 이에 대한 응답처럼 1932년, 본회 수녀들이 사명을 하던 벨기에 보랭(beauraing)의 학교 정원에 황금심장의 성모님이 발현하였다.

수녀회는 시대의 징표에 마음을 열며, 국경을 넘어 바다를 건너 아프리카 대륙의 콩고와 상아해안으로 파견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1948년 가난한 이들과 미소한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려는 의지는 새로운 표현을 찾게 되고 신생교회들의 요청에 응답하게 되었다. 이때는 나라에서의 선교에 불리움을 받은 시기로서 초창기 바틀로트처럼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수녀들은 신생국가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떠났다… 우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요청에 따라 현시대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초창기 바틀로트들과 똑같은 정신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널리 알려지고 사랑받게 하기 위해 교회의 이름으로 파견된 자임을 자각한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회칙 서언)
  • 1948년 콩고 로와에 첫 진출
  • 1966년 한국진출
  • 1967년 상아해안과 칠레 진출
  • 1993년 루마니아에 분원 개설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수녀들은 현재 4대륙에서 창설자 바틀로 신부의 정신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 유럽

    벨기에, 프랑스, 룩셈부르크

  • 아시아

    한국, 캄보디아

  • 아프리카

    콩고, 코트디부아르

  • 남아메리카

    칠레